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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영원한 황비 엘리자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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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황비 엘리자베트는 막시밀리언 바이에른 공작의 둘째 딸이었습니다.
천성이 밝고 명랑했던 엘리자베트는 어릴때 부터 승마를 즐겨했는데, 그 수준이 프로급이었다고 합니다. 애칭은 씨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아직도 씨시를 황비로 생각을 하고 있죠..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세프는 씨시의 외사촌이었습니다. 프란츠 요세프 황제는 씨시의 언니인 헬렌과 결혼을 하기로 했고, 바드 이슐에서 만났는데,그때 요세프 프란츠는 그 동생 씨시에게 반하게 됩니다.
결국, 씨시는 16살의 어린나이에 황후라는 무거운 왕관을 쓰게 됩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씨시는 엄격한 궁생활이 힘들었고, 특히 시어머니 소피와의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얼마뒤, 씨시는 첫째 딸을 낳습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나자 마자 시어머니가 씨시에게는 황비의 위엄이 없다는 핑계로 아기를 데려가 양육하고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소피' 라고 지었습니다. 둘째딸 지젤라가 태어났을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이 받은 씨시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잠시 여행을 가는데, 그 과정에서 큰 딸 소피가 병으로 죽고 맙니다. 딸을 잃은 충격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씨시는 더더욱 궁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긴 요양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후 씨시는 아들 루돌프를 낳고, 여행을 다닙니다. 씨시를 엄청나게 사랑했던 황제가 부탁을 했지만, 실제로 씨시가 오스트리아에 머무른 것은 일년에도 며칠이 안된다고 합니다.
1867에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중 제국이 세워지고, 헝가리인들의 반발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헝가리를 사랑했던 씨시는 자신의 시녀들까지 모두 헝가리인으로 바꾸기도 하고, 헝가리의 궁에 머무르는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헝가리 국민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889년에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애인인 유부녀와 함께 권총으로 동반 자살을 합니다. 이 사건으로 씨시의 삶과 합스부르크가의 운명은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아들이 죽은 후 씨시는 죽을때 까지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트뢰로 가기위해
제네바 호수를 산책 중이던 씨시는 1898년 9월 10일, 61세의 나이로 괴한의 칼에 심장이 찔려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자베트(씨시)는 아직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국민들의 가슴에는 영원한 황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만큼이나 오스트리아에 가면 씨시의 초상화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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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시와 황제가 살았던 호프부르크 왕궁의 미하엘 문입니다. 헤라클레스의 상이 네개가 서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궁중 식기 박물관과 황제의 아파트먼트가 있습니다. 호프부르크 궁전은 13세기부터 1918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멸망 때까지 합스부르크 왕가가 살았던 궁전으로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 세계 최고의 스페인식 승마학교, 국제 회의장 등으로 사용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빈 소년 합창단을 일요일 오전 9시 호프부르크 왕궁 성당(Burgkapelle)으로 가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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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문을 통과하여 황제의 아파트먼트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는 이전 황제가 쓰던 방은 쓰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어 호프부르크 왕궁에는 무려 2.600개의 많은 방이 있습니다.
황제의 아파트먼트 티켓을 사면, 씨시의 방과 프란츠 요세프의 집무실 등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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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식기 박물관입니다. 저는  황제의 아파트 먼트 + 씨시박물관 + 궁중 식기 박물관 티켓을 샀습니다. 이 곳은 궁중에서 사용하던 은식기, 도자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던 씨시 때문일까요, 여행을 위한 식기들도 따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헝가리의 명도자기 헤렌드의 그릇들도 있고, 중국,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선물로 받은 식기들도 있었습니다. 한국 것은 못봤습니다 ㅠ
그 다음은 씨시 박물관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곳에는 평소에 씨시가 사용하던 미용재료와 도구들과, 씨시의 초상화들.. 그리고 소지품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씨시가 죽을때 입고 있었다는 가슴쪽에 구멍이 난 검은색 상복도 있었습니다.(진짜인지는;) 생각보다 씨시를 찌른 칼은 작더군요..

중간중간에 기념품 판매점이 있었고 그 곳에서 씨시가 초상화에서 머리에 꽂고 있던 별모양의 핀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아파트먼트로 연결되어있었습니다 -
황제의 아파트 먼트에서는 씨시가 쓰던 방, 식당, 응접실 등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황제였던 프란츠 요세프의 방은 침대도 그렇고 수수했습니다. 벽과 책상위에는 그의 아내의 사진과 아이들 사진으로 가득했습니다.

씨시의 화려했지만 불행했던 삶을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